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소에서 고객이 맡긴 '코인'을 임의로 처분·소비할 수 있다면 이를 거래소의 자산으로 봐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단순히 고객 가상자산을 맡아 주고 매매하는 대부분의 경우엔 거래소 측의 처분 권한이 없는 만큼, 이를 거래소 자산으로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다.
고객이 맡긴 가상자산을 어디까지 거래소 자산으로 인정할지는 국내 암호화폐 업계의 핵심 쟁점이다.
주요 가상자산거래소에 위탁된 고객 코인이 40조원이 넘어, 이를 대거 거래소 자산에 포함하면 대기업 규제를 새로 받을 수 있다.
6일 가상자산 업계 등에 따르면 서울시립대 이세중 교수와 거래소 코빗의 김회석 이사는 이런 연구 결과를 최근 한국회계학회의 '가상자산 연구논문 세미나'에서 공개했다.
이 교수팀은 "고객의 가상자산을 사업자의 수익 창출을 위해 쓰고 이 중 일부를 고객에게 배당하면 해당 자산의 통제권이 사업자(거래소)에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이 경우 사업자의 자산 및 부채에 포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단순 보관 및 매매 때는 거래소 측이 고객의 동의와 통지 없이 해당 자산을 자사 사업을 위해 쓸 수 있는 여지가 아예 없는 만큼, 이를 자산 및 부채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거래소의 이더리움 '스테이킹' 대행은 자산 인정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스테이킹은 암호화폐 '이더'를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맡기면 지분에 따라 보상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이 경우는 거래소의 처분 통제권이 미미하고 고객 의사에 따른 대행에 불과하다는 것이 연구진의 판단이다.
작년 7월 금융위원회는 '가상자산 회계공시 투명성 제고방안'을 발표하며 거래소가 위탁 자산과 관련해 '경제적 통제권'에 따라 자산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이 기준이 아직 구체성이 부족해, 자산 인정 여부를 둘러싸고 혼선이 잦을 것이라는 우려가 적잖다.
이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은행은 고객 예금을 받아도 이를 대출 등에 자유롭게 활용해 현금 자산으로 인정되지만, 자산운용사는 고객 증권을 이렇게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어 자산·부채 대상에서 제외된다"며 "이런 과거 사례를 참고해 가상자산에도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자 고심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아직 자산 기준이 정립되지 않았는데 정작 거래소가 파산하면 고객 위탁 자산이 몽땅 회사 자산으로 간주되어 고객이 보상을 못 받는 것이 현실"이라며 "관련 법령을 정비해 별도 보호 장치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팀의 집계에 따르면 업비트 등 주요 가상자산거래소 5곳에 위탁된 국내 고객의 가상자산은 작년 말 기준으로 도합 43조7천252억원에 이른다.
1위 거래소 업비트는 단독 위탁 자산이 33조5천551억원에 달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 규제를 자산 기준으로 한다.
자산총액이 5조원을 넘기면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되고, 전년도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0.5%(올해 10조4천억원)를 넘기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 되어 관련 공시 의무와 사익편취 금지 등 규정이 적용된다.
애초 공정위는 가상자산거래소의 고객 예치금은 사업자 자산으로 봤지만, 위탁된 코인은 자산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올해 공정위의 대기업 지정 발표에서 업비트 운영사인 두나무는 자산총액 9조4천여억원으로 재계 순위 53위였다.
다른 주요 가상자산거래소 4곳(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은 자산총액이 5조원을 넘지 않아 규제 대기업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기준이 바뀌어 위탁자산을 자산총액에 반영하면 두나무의 재계 순위가 크게 뛰고 2위 거래소인 빗썸이 대기업으로 신규 지정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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