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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영 선언 31주년...위기감 고조된 삼성전자

박소현 기자 | 기사입력 2024/06/06 [06:59]

신경영 선언 31주년...위기감 고조된 삼성전자

박소현 기자 | 입력 : 2024/06/06 [06:59]

▲ 1993년 당시 '신경영 선언'하는 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고 대변되는 이른바 '신경영 선언'을 한 지 7일로 31주년이 된다.

 

이를 계기로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한 삼성전자지만, 재계 안팎에서는 삼성전자가 최근 직면한 위기 상황이 '신경영 선언' 이전만큼 심각하다고 보고 있다.

 

6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 계열사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행사 없이 '신경영 선언일'을 보낼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삼성 안팎에서는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이라는 이 선대회장의 당시 선언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이는 삼성전자가 현재 처한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일단 글로벌 경기 침체, 지정학적 리스크 등으로 경영 불확실성이 커진 상태다.

 

주력이던 반도체 산업은 작년 15조원에 육박하는 적자를 낸 데다, 최근 다운턴(하강 국면)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인공지능(AI) 시장 확대로 수요가 급증한 고대역폭 메모리(HBM) 대응이 늦어 SK하이닉스에 주도권을 뺏긴 상태다.

 

AI 반도체 시장의 '큰 손'인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4일 삼성전자 HBM이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소문에 대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한숨 돌리기는 했지만, 업계에서는 삼성의 엔비디아 공급이 임박했다기보다는 황 CEO가 원론적인 수준에서 발언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황 CEO가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마이크론과 협력하고 있으며 3사 모두 우리에게 메모리를 공급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가격 협상력 등을 위해 공급망 다각화가 필요한 엔비디아의 입장을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는 1위 업체인 대만 TSMC와의 격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고, 후발업체인 인텔에도 쫓기는 상황이다.

 

통상 연말에 사장단 인사를 하는 삼성전자가 이례적으로 지난달 21일 반도체 사업의 수장을 전영현 부회장으로 전격 교체한 것도 삼성전자의 위기의식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모바일 사업의 경우 지난해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량 1위를 애플에 내주기도 했다. 올해 1분기에는 첫 AI 폰인 갤럭시 S24 시리즈가 선전하며 도로 1위를 되찾기는 했지만, 긴장의 끈을 늦추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AI 가전=삼성' 공식을 강조하며 TV와 가전 사업의 실적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긴 하지만, 1분기만 해도 경쟁사인 LG전자 영업이익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실적 부진을 겪은 네트워크사업부는 최근 인원 감축 등 경영 효율화에 돌입했다.

 

삼성전자 일부 부서에서만 이뤄졌던 임원들의 주 6일 근무가 최근 다른 전자 관계사까지 확대된 것을 두고 삼성 전반에 위기감이 고조됐음을 방증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지난달 29일 사상 처음으로 파업을 선언한 데 이어 첫 단체 행동으로 7일 연가 투쟁에 나서기로 한 상태다.

 

삼성 전반에 걸친 이 같은 위기감은 승어부(勝於父·아버지를 능가함)를 다짐한 이재용 회장 앞에 놓인 과제이기도 하다.

 

이 회장이 지난 2월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사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며 한결 부담을 덜긴 했지만, 아직 항소심 등이 남은 만큼 사법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책임 경영 차원의 등기 임원 복귀도 연기된 상태다.

 

이 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삼성의 수직적 지배구조도 개선 과제로 꼽히지만, 아직 별다른 해법을 찾지 못했다.

 

글로벌 복합 위기 속에서 삼성의 초격차 경쟁력을 회복하고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것도 이 회장의 핵심 과제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 회장의 1심 무죄 선고 이후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M&A) 등에 시동이 걸릴 것으로 기대했지만, 아직 뚜렷한 결과물은 나오지 않고 있다. 최근 미국 냉난방공조 기업 레녹스와 합작법인을 만들어 북미 공조 시장 공략에 나서기로 한 것이 그나마 눈에 띄는 행보다.

 

삼성의 대형 M&A는 2017년 9조원을 투자해 미국 전장업체 하만을 인수한 것이 마지막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 신설한 미래사업기획단의 향후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10년 이상 장기적인 관점에서 삼성의 미래 먹거리 아이템을 발굴하는 역할을 맡은 미래사업기획단이 이 선대회장 시절 이차전지와 바이오제약 등 5대 신수종 사업을 발굴한 신사업추진단에 비견되는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이 회장이 2020년 무노조 경영 방침을 공식 폐기한 이후 4년 만에 노조가 처음으로 파업을 선언하고 집단 행동을 예고한 만큼 노조와의 갈등을 해소하고 구성원의 사기를 진작시킬 방안도 찾아야 한다.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이 여전히 '뉴삼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며 "이 선대회장의 '신경영 선언'에서 이어진 초격차 경쟁력을 되찾고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강력한 메시지나 행보를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곳곳에서 삼성이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가 나오는 점을 분명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며 "주력 사업의 기술 경쟁력을 높이고 '삼성다운' 도전과 혁신으로 미래를 책임질 먹거리를 발굴하지 못한다면 삼성의 미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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