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배재규 한투운용 대표 "비트코인 현물 ETF 나오면 나도 살 것""ETF 시장 양적으로 팽창, 질적으론 '글쎄'…적립식 장투하라"
배재규(63)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 사장은 여의도 증권가에서 '상장지수펀드(ETF)의 아버지'로 불린다.
배 대표는 삼성자산운용에 재직하던 2002년 국내 시장에서 처음으로 ETF를 들여왔다. 당시만 하더라도 생소했던 ETF는 지난해 순자산 100조원 시대를 열며 어엿한 국민 재테크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배 대표는 28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 때문에 ETF를 통한 코스피 장기투자가 어렵다며 기업 거버넌스 개혁과 상속세 감세 등을 동시에 주고받는 '대타협'을 이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배 대표와 일문일답.
-- 작년은 뜻깊은 한 해였던 것 같다. ETF 시장 개설 21년 만에 순자산 100조원 시대를 열었고, 한국거래소에서 개인 공로상도 받았다.
▲ 2023년은 양적으로 팽창한 한 해였지만 질적으로 봤을 때 투자자들이 ETF를 통해 정말 돈을 벌었는지, 그 부분을 놓고 보면 잘 모르겠다. 투자자들이 ETF를 지나치게 단타로 활용하는 것 같다. 단기적인 관점에서 보지 말고 길게 자산배분 수단으로, 적립식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 내가 생각하는 최선은 기술주다. 2000년 전까지는 제조업 시대였다면 지금은 기술주 시대라고 생각한다. 개별 종목이 아니라 나스닥이나 반도체 ETF에 장기 투자를 하라.
-- 작년은 테마형 ETF 인기도 뜨거웠다. 그런데 테마형 ETF는 인덱스 펀드에서 출발한 ETF의 철학을 훼손하고 패시브 투자의 장점도 없어 시장을 혼탁하게 만든다는 지적도 있다. 'ETF의 아버지'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 시장 전체를 사는 게 이론적으로는 좋다. 기술주면 나스닥을 사는 거고, 미국 산업을 산다고 하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한국은 코스피에 투자하는 거다. 그런데 한국 시장은 지수가 너무 안 오른다. 테마형 ETF는 지수와 개별 종목 그 중간쯤에 있는 상품이다. 고객들의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시대 변화에 맞는 산업군과 테마를 묶어주는 거다. 기본적으로는 지수를 사는 게 교과서적인 접근이다.
가령 애플을 2008년부터 투자했다면 수익률이 31.4배에 달하지만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최고점 대비 가격하락률(MDD)은 60%나 된다. 유로존 경기 침체가 있었던 2013∼2014년경에는 애플 MDD가 43.8%, 2016년 아이폰 판매량 감소 당시에는 30.4%로 집계된다. 만약 애플을 2008년부터 투자해 지금까지 갖고 온 투자자가 있다면 하락 폭을 견디는 동안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 환자가 됐을 거다. 같은 기간 나스닥100이나 S&P500 수익률 9.6배, 4.5배로 애플보다 낮지만 MDD도 훨씬 견딜 만하다. MDD를 줄여주는 게 자산 배분이다.
-- 패시브 투자를 해야 한다면 코스피200보다 나스닥100에 투자해야 하나. 최근 '국장 탈출은 지능순'이라며 2030 젊은 개인투자자들은 한국 시장을 떠나고 있는데.
▲ 투자는 더 좋은 걸 해야 한다. 그게 도덕적으로 나쁜 게 아니다. 미국장 투자하는 게 나쁜 건가. 미국은 계속 주주가치를 올려주지만 국장은 상대적 매력이 떨어진다. 우리나라는 대주주 지분율이 평균 37%나 되지만 미국은 7%에 불과하다. 이 부분을 빼고 뭘 해봤자 실효성이 없다.
-- 정부에서 지난 26일 발표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어떻게 평가하나.
▲ 투자해놓고 주가가 빠져도 배당이 괜찮으면 주식을 들고 갈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배당이 안 나오니까 주가가 안 오르면 남는 게 없어 팔아치운다. 우리나라 투자자들이 단타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주가가 오르면 지배주주는 상속·증여세를 많이 내야 해서 좋아하지도 않는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주가 상승이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되는 시스템을 만드는 거다. 상속세를 아예 내지 말라는 게 아니라 지배주주가 '그 정도는 내겠다' 할 정도로는 낮춰줘야 한다. 대신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회사뿐 아니라 주주까지 포함하도록 상법을 개정하고,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 등 주주환원을 확대해야 한다. 상속세 낮추는 걸 '부자 감세'라고 볼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부자 감세가 아닐 수도 있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특정 주체에게만 이득을 주겠다고 하면 안 된다. (지배주주와 소액주주가) 같이 가야 지속 가능성이 생긴다.
-- 개인투자자들은 어떤 투자를 해야 하나.
▲ 투자란 '미래 수익을 위해 현재의 소비를 양보하는 일'이다. 가장 중요한 게 '미래'다. 모든 사람이 지금 당장 수익을 얻으려고 하지, 미래를 얘기하면 안 듣고 싶어 한다. 그래서 성공했나. 한두 번 짜릿하게 100% 수익을 거뒀다고 해도 3번째, 4번째에서 무너지면 아무 소용이 없다. 잔잔하게 적립식 투자로 가도 부자가 될 수 있다. 인간은 단기적으로 승부를 보려는 본능이 있지만 타협을 봐야 한다. 최소 50∼70%은 자산배분으로 비중을 가져가고 나머지 작은 부분으로 테마도 타 보고 엔비디아도 사 보고 그러는 거다.
-- 미국 시장에서 10개 운용사의 비트코인 현물 ETF가 상장했다. 국내에서는 아직 매매중개도 할 수 없는데 비트코인 현물 ETF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비트코인은 세상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 거냐의 문제다. 레이철 보츠먼의 '신뢰 이동'이라는 책을 보면 과거 신뢰는 정부나 입법부 등 제도에 있었지만 이제는 개인과 개인 사이로 내려왔다. 신뢰가 공식화된 제도에만 있는 게 아니라 개인적인 관계로 내려온 것이다. 이는 인터넷이라는 기술 시대로 넘어와 가능해진 것이다. 제조업 기준으로 시대를 보면 안 된다. 블랙록은 인버스, 레버리지도 안 할 정도로 원칙 있는 운용사다. 래리 핑크(블랙록 CEO)가 공부해서 비트코인 현물 ETF를 상장시킨 게 돈에 눈이 멀어서일까? 새로운 걸 보지 않았을까 싶다. 나도 비트코인 현물 ETF가 나오면 포트폴리오 일부로 조금 투자해보고 싶다.
-- ETF 시장이 고속 성장하면서 점유율을 선점하기 위한 자산운용사들의 지나친 수수료 인하 경쟁이 '제살 깎아먹기'로 귀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실제로 작년 이차전지 ETF 때문에 타 운용사들 간 경쟁이 격화하자 삼성자산운용 시절 같이 일했던 후배들을 불러 중재도 했다고 들었다.
▲ 그들에게 이래라저래라할 순 없지만 상대방에 적대감 갖고 일하지 말라, 그 정도 얘기했다. 수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가 다 같이 같은 곳에 있었는데 당시엔 이렇게 서로 다른 데서 일할 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니 앞으로 수년 뒤에 또 어떻게 될지 모르니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경쟁하자, 이 정도로 말했다. 삼성자산운용에서 ETF 하던 사람들이 다른 운용사들로 옮겨서 각자 헤드가 됐지만 적은 아니다. 물론 타사 ETF를 똑같이 가져와서 수수료 낮춰 출시하는 건 상도의에 어긋난다. 같은 반도체 ETF라 하더라도 기초자산으로 삼는 벤치마크(BM)는 미국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를 가져올 수도 있고, MV반도체지수를 가져올 수도 있다. 운용사들도 서로 협력해서 '윈-윈'하는 방향을 취해야 한다.
-- 2022년 2월 한투운용 대표로 취임했으니 2년이 조금 넘었다. 그동안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점과 아쉬운 점을 하나씩 꼽는다면.
▲ 펀드 강자였던 한투운용을 ETF 시대로 옮겨오게 한 건 잘한 점이다. 시장의 미래는 자산 배분에 있을 거라고 본다. 잘못한 건, 아직 그렇게 많이 옮겼는데도 부족하다는 거다. 회사의 문화가 바뀌어야 하고 일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전반적으로 ETF로의 전환은 잘했는데 그 속도나 성숙도는 아직 내가 기대하는 수준까지는 못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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